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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피해자라면 그렇게 행동했겠어? “네,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2022-12-14 15:17:10



성범죄 피해자라면 그렇게 행동했겠어? “네,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월간노동법률] 박정택ㆍ장현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1. 사안의 개요


최근 성인지 감수성 및 성범죄에서의 경험칙과 관련된 매우 유의미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대법원 2022. 8. 19. 선고 2021도3451). 

피고인(남, 70세)과 피해자(여, 30세)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알게 됐고 어느 겨울날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게 됐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여기는 너무 춥다. 예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나를 믿어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 모텔에 가자"는 취지로 말해 피해자를 모텔에 데리고 들어가 강제로 추행했다. 피고인은 강제추행죄로 기소됐다. 피해자의 진술이 본건의 유일한 직접 증거였기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중요 쟁점이 됐다.

2. 법원의 판단

1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3심은 1심과 같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 취지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2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한 이유와 3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한 이유 중 경험칙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판결
"아래 사정들에 의하면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3심(대법원) 판결
"아래 사정들에 의하면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한 행동이라고 충분히 납득이 된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이용한 채팅 앱은 나이 차이가 15세 이상일 경우 대화가 불가능하도록 설정돼 있었다. 피해자는 위 제한을 피하기 위해 63세의 '꽃이 핀다면'이라는 대화명으로 계정을 새로 가입하면서까지 피고인에게 먼저 연락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지능지수가 72 정도로 낮고, 고등학교 졸업 후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는 등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다.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대한 욕구가 높은 반면 현실적으로는 심리적으로 고립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채팅 앱을 통해 연락이 된 후 자신은 연예인과 친분이 있고 재계 인사들과도 잘 안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상의하라, 좋은 관계로 서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피해자는 기뻐하면서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와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는 직접 차량을 운전해 피고인이 거주하는 시로 가서 피고인을 만났고, 이날 피고인을 처음 만났음에도 별다른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고, 피고인의 차량을 함께 타고 모텔로 이동해, 모텔에 함께 들어갔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피고인이 춥다고 모텔에 가자고 했고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해서, 나이가 많아서 추위를 많이 타나 보다 하는 생각에서 피고인의 제안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나이 차이, 피해자의 심리 상태 등에 비추어 이러한 피해자의 행동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또한 피해자가 모텔에 들어가는 데 동의하고 안아보는 걸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을 그 이상의 성적 접촉을 원하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피해자는 모텔 내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현금 50만 원을 받았다.
 
피고인이 50만 원을 주려고 하자 피해자는 당초 한두 차례 거절했는데, 피해자가 더 이상의 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 강제추행과 배치되는 사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피해자는 모텔을 나서기 전 피고인의 얼굴에 묻은 화장품, 립스틱 등을 닦아줬다. 피해자가 모텔에서 나오기 전 피고인의 얼굴에 묻은 립스틱을 닦아준 것이 이례적이기는 하나, 피해자는 "남들이 원조교제로 오해해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그랬다"고 진술하고 있어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고, 피해자가 굳이 위와 같은 이례적인 사정을 숨기지 않고 진술했다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사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피해자는 모텔에서 강제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서도 즉시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텔을 빠져나오려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모텔에서 나와 피고인의 차량을 같이 타고, 피해자 차량이 주차된 장소로 돌아온 후 자신의 차량을 운전해 귀가했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 너무 놀라서 피고인의 차량 안에서 오줌을 지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온몸을 락스로 샤워했으며, 새벽 02:20경 친구에게 괴롭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고, 03:30경 해바라기센터에 전화했으며, 이후 자살 시도를 했다. 피해자가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컸던 피고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심한 추행을 당해 극도로 당황하고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 상황이었다면, 피해자가 즉시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홀로 모텔을 빠져나오지 않은 채 피고인의 차를 타고 자신의 차가 있던 장소까지 돌아왔다고 해서, 그것이 매우 이례적이라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피해자는 사건 당일 해바라기센터에 전화해 상담하면서도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나 공식적인 사건처리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후 피고인이 피해자의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자 화가 나 피고인을 고소하게 됐다. 피해자는 사건 직후 03:30경 해바라기센터에 전화하면서 "피고인은 돈이 많고 TV에도 나온 사람이라 내가 신고해도 경찰에 돈 써서 풀려날 것 같고, 내 의사는 아니지만 돈을 받았으니, 꽃뱀 취급을 할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음 날 친구가 신고해야 한다고 권유하고, 피고인 역시 제대로 사과하지 않자 고소했다. 이러한 망설임과 고소 경위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대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함을 천명한 이후(대법원 2017두74702 교원소청심사위원회결정취소 사건 판결,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 판결'), 세간으로부터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기만 하면 법원이 그 신빙성을 인정해 준다'라는 오해를 사게 됐고 이에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자유심증주의를 제약하는 법리'라는 비판도 있어 왔다. 또한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에서는 입증의 정도가 '증거의 우세함' 정도로 완화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그러나 위 판시는 무죄추정의 원칙의 기준인 '합리적 의심'과 자유심증주의 원칙의 내재적 한계인 '경험칙'이 무엇인지에 관해 성폭력 사건의 심리와 판단에서 통용되던 기존의 잘못된 통념을 극복하고 합리성과 경험칙의 내용을 재구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사려 깊은 관점과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였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정리-제시함으로써 일반적인 사건에서의 진술의 신빙성 판단 방법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한 한편,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기준 중 하나인 경험칙과 관련해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라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기 전까지는 피해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해자는 피해 상황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피해자가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했더라도 자신이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을 거부할 수 있다', '피해자는 피해 상황에서 명확한 판단이나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생각한 성범죄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다. 성범죄 피해자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며 피해자에게 돌을 던질 때 근거로 삼았던 모습들이다. 즉, 대법원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칙으로서 받아들였던 피해자다움의 통념에서 벗어나, 오히려 다양한 피해자의 모습들을 경험칙으로써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4. 시사점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역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중요 쟁점이 된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12면에 달하는 구체적인 설시를 통해, 피해자다움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깰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 조사 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다움에 대한 기존 통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조사결과는 정당하다고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 조사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는 경우, 사전에 미리 다양한 피해자의 모습들을 편견 없이 경험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다 사려 깊은 관점과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박정택ㆍ장현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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